장·차관 나섰지만…탄핵정국에 ‘등록금 족쇄’ 풀렸다

신하영 기자I 2025.01.09 16:00:22

대학 등록금 17년째 동결에 “한계 상황, 인상 불가피”
고물가·재정난·탄핵정국 맞물리며 대학들 줄인상 예고
장관·차관 단속 나섰지만…사립대 53%는 ‘인상 계획’
교육 전문가 “대학 교육·연구에 지장…규제 풀어야”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교육부 장관·차관이 단속에 나섰지만 대학 등록금이 줄 인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물가로 인해 법정 인상 상한선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대학들의 재정난 심화와 탄핵정국으로 인한 국정 장악력 약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학가 등록금 인상 확산 조짐

수도권의 A사립대 교수는 9일 “올해로 17년째 등록금 동결인데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더 이상의 등록금 동결은 어렵다”며 “교내 등록금심의위원회에 참여한 학생들도 인상에 합의했다”고 했다. A대학은 올해 약 4%대에서 등록금을 올리기로 잠정 결정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이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 2025학년도 등록금 관련 거점국립대학총장 협의회’ 영상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등록금 인상 움직임은 대학가로 확산하고 있다. 서강대·국민대가 인상을 결정한 데 이어 연세대·한양대·중앙대·이화여대 등이 여기에 가세할 전망이다. 앞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각 대학 총장들에게 서한을 보내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등록금을 동결해 주실 것을 간곡하게 요청드린다”고 했지만 이런 읍소가 먹혀들지 않는 셈이다.

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이 흔들리게 된 가장 주된 원인은 고물가에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들은 최근 3개 연도 물가상승률의 1.5배 이내에서 등록금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고물가로 인해 등록금 인상 한도가 5.49%까지 상승하면서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교육부가 등록금 인상 대학에는 국가장학금 2유형을 제한하고 있지만 인상 한도가 올라간 만큼 국가장학금 지원을 포기하고 등록금을 올리는 게 낫다는 판단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작년에도 등록금 인상 한도가 5.64%까지 치솟자 교육부의 동결 요청에도 4년제 대학 26곳이 등록금을 올렸다. 올해는 이보다 2배인 50개 대학 이상이 등록금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가 151개 회원 대학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 대학 90곳 중 53.3%인 48곳에서 ‘올해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논의하고 있다’고 응답한 38곳(42.2%) 중에서도 일부 대학은 인상 대열에 가세할 전망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6개교의 인상에도 지난해 대학 평균 등록금은 682만7300원으로 전년(679만4800원)보다 0.5%(3만25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탄핵정국으로 현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약화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8일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국총협)와 영상 간담회를 열고 “엄중한 시국에 국립대에서 등록금 동결에 참여해 모범을 보여달라”고 당부했지만 총장들은 “신중히 검토한 뒤 최종 입장을 결정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정부로부터 국고를 지원받는 국립대조차 동결 대열에서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17년째 등록금 동결…재정난 호소

(그래픽=김정훈 기자)
올해로 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이 17년째 이어지면서 대학들의 재정난이 심화하고 있다. 대학의 본질적 기능인 교육·연구 투자도 축소되고 있어서다. 교육부는 2009년부터 등록금 동결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등록금 인상 시 국가장학금 2유형 지원을 제한하는 간접 규제는 2012년부터 시행했다.

사총협 설문조사에서는 17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로 인한 어려운 점(복수 응답)을 묻자 97.8%(88곳)가 ‘첨단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개선’을 꼽았다. 이어 96.6%(87곳)는 ‘우수 교수·직원 충원’이, 94.5%(85곳)는 ‘학생복지 개선’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런 이유로 각 대학 등록금심의위원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학교 측의 등록금 인상 계획에 쉽게 반대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A대학 관계자는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학생 대표들도 교육·복지 시설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간접 규제를 풀어 법정 한도 내에서 등록금 인상을 결정하는 대학에는 국가장학금 차단 등 불이익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등록금을 17년째 묶어놓다 보니 대학 교육·연구에도 심각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며 “우수 교수를 확충하려고 해도 이를 못하는 게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법으로 정해진 한도 내에서의 등록금 인상 대학에는 불이익을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사총협 사무총장도 “대학 운영 전 분야에 걸쳐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며 “정부가 등록금에 대한 간접 규제를 풀어 법정 인상 한도까지는 대학별 판단에 따라 인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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